본문 바로가기

인도네시아 깊이 알기/천의 얼굴 인도네시아

알리샤의 불평을 통해서 보는 인도네시아



“이제 내게 인도네시아는 오염, 플라스틱, 이슬람이야.”

알리샤가 연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알리샤는 20대 중반의 폴란드 여성으로, 나와 함께 현재 다르마시스와(Darmasiswa) 2014/2015 프로그램을 통해 국립말랑대학교(UM/Universitas Negeri Malang)에서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본국에서 체육‧관광‧교양학부를 졸업한 직후, 구글 이미지를 통해서 본 인도네시아의 이미지를 품에 안고 이곳에 와있다. 초창기에 알리샤는 폴란드에 있는 남자친구를 이곳에 초대해서 함께 일자리를 구해 살 생각을 할 정도로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장밋빛으로 그리고 있었다. 아래는 그녀를 매혹했을, 구글에서 "indonesia"를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들의 일부이다.

 

 

 

   









하지만 막상 인도네시아에서 생활을 시작하자 알리샤는 기대와는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고 불평불만이 늘어갔다. 그리고 그 불만은 얼마  전 열렸던 파자마 파티에서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었다. 알리샤와 그녀의 친구들이 기획한 말랑의 외국인 여성 동지들을 위한 파자마 파티(Malang Ladies Night), 달콤한 초콜릿과 음료가 가득했을 이 토요일 밤의 행사에 나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지만, 평상시 알리샤가 털어놓는 이야기와 그녀가 파티에서 보여주겠다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상황을 통해 미루어 봤을 때, 파티는 분명 인도네시아에서 그녀들이 겪었을 씁쓸하고 황당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졌으리라 짐작된다.

 

   이 글에서는 내가 알리샤에게서 들었던 불평 아닌 불평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모습을 점검해보려고 한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괜히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했지만, 차츰 내가 인도네시아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곳에 대해 눈감고 보려 하지 않았던 한 면모가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정확하게 그려지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염 & 플라스틱

 

주말이면 알리샤는 몹시 바쁘다. 이곳 말랑(Malang)에서도 몇 시간을 가야 당도할 수 있는 산이나 바다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열대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위치한 수영장엘 가곤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땡볕을 몇 시간이나 달려야 해도 그녀가 기어코 말랑을 벗어나는 이유는 이곳이 너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고 “자연이 고프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공기가 좋고 깨끗하기로 이름난 말랑이지만, 알리샤가 구글에서 찾아보았던 이미지, 즉 휴양림과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녀의 말처럼,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많은 거리에는 오토바이와 차가 많아 매연이 심하며, 쓰레기가 널려 있다. 거리마다 즐비한 음식점(Warung,Lalapan,Kaki lima 등)에서는 기름을 까맣게 변할 때까지 쓰기 일쑤이며 다른 것을 만지던 손으로 음식을 푸고 덜고는 하기에 청결하지 못할 때도 많다. 많은 공공 화장실에 손 씻는 물과 볼일을 보고 내리는 물이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알리샤가 “봉지”와 “플라스틱 제품”이라는 항목을 말해준 것 외에 충분히 더 불평하지 않았기에(?) 나의 관찰을 덧붙여 부연해 보고자 한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살 때 우리나라와 달리 플라스틱 봉지에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다. 아니 그보다, 무료로 퍼준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주 작은 물건을 사도 그것을 크기에 맞는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준다. 그렇게 해서 불필요하게 많이 손에 쥐어진 봉지들은 거리 여기저기에 굴러다닌다. 이 점에서 플라스틱에 대한 알리샤의 관찰은 오염에 대한 그녀의 관찰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음식을 담거나 먹을 때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냄비와 프라이팬, 유리잔을 제외하고는 많은 접시, 음식용기, 수저, 그리고 컵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때때로 뜨거운 음식이며 차도 대중없이 이 플라스틱 제품들에 담기곤 해서 나는, 우리나라였다면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며 질색했겠지, 생각할 정도이다.

 

   즉, 오염과 플라스틱이라는 알리샤의 키워드를 통해서 인도네시아에서의 환경과 건강에 대한 공공의 기준과 실태가 폴란드나 한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의 그것보다 수준 이하라는 것, 또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는 우리 눈에 더러워 보일 수도 있는 환경이, 알리샤의 표현처럼, 비교적 별다른 “성찰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몸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월등한 청결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포스팅할 것이다).

 

 

이슬람

 

인도네시아는 국가이념(Pancasila)에 이슬람뿐 아니라 힌두, 가톨릭, 불교,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종교로서 공인되어 있고 실제로 여타의 종교를 따르는 신자들이 존재함에도 절대 다수가 무슬림으로 분류되기에 이슬람 국가로 불리곤 한다. 그런 만큼 대부분의 여성들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머리카락을 베일(hijab/jilbab)로 가리고 긴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어떤 곳을 가도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Musholla)가 갖추어져 있으며,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들이 할랄(Halal)에 따라 조리된 것이어야 하거나 알콜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슬람의 율법과 관행들이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의 의식주에 뿌리박혀 있다. 또한 무슬림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다섯 번의 기도(Sholat)를 바치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어, 이슬람의 영향이 인도네시아인들의 시간과 정신에까지 스며들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리샤는 이슬람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변형되었고 예술성을 잃었다고 불평했다. 그녀는 구글에서 본 전통적인 자바 댄서의 모습을 추억하면서 말했다. “원래 여기 여자들의 옷은 몸을 드러내는 거였잖아. 그건 굉장히 아름답고 섹시했어. 근데 왜 지금 여자들은 몸을 다 가려야 해? 온몸을 칭칭 동여매고 다니는 여자들을 보는 게 나로선 좀 힘들어.” 알리샤는 셔츠 목 부분의 단추를 끄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알리샤는 또 얼마 전 다녀온 족자(Yogyakarta)를 그리워하며 말을 이었다. “불교 유적인 보로부드르(Borobudr) 사원은 어떻고? 힌두 유적인 쁘람바(Pramanan) 사원은 어떻고?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 이들의 건축양식은 정말 엄청났다고. 근데 지금은 봐. 여기저기에 플라스틱처럼 생긴 이슬람사원(Masjid)들만 넘쳐나고 있어. 지어지기도 빨리 지어지더군. 거기에선 어떤 예술성도 찾아볼 수 없어.” 알리샤는 이들의 시간과 정신의 측면에 대해서도 운을 떼었다. “사람들은 온통 이슬람사원 사이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지. 기도도 여러 번 해야 하고. 그 속에서 이제 사람들은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마치 이슬람에 눌려있는 사람들 같아.”

 

   알리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이슬람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세 가지 점에서 그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다. 먼저, 인도네시아인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갖게 되어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를 잃었다는 알리샤의 생각. 비록 인도네시아에 힌두, 불교, 그리고 이슬람 순으로 종교가 유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슬람 또한 전통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오래 되었다. 또한 많은 학자들은 관용적인 자바 토착문화의 영향 안에서 이 세계종교들은 다른 어떤 것을 대체하기보다 실질적으로 혼합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또한, 알리샤는 이슬람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고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단일하게 취급하여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비록 이곳 여성들이 몸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잘 입지는 않지만 이들의 베일과 옷차림에도 여러 세밀한 옵션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무슬림 여성들은 비무슬림 국가의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짧은 치마를 즐겨 입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 특히 이슬람은 진정 사람을 창조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가? 이슬람의 규율이 무슬림들로 하여금 실생활에서 이슬람식으로 살아가도록 요구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신앙생활 속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나아가 구원받는다고 여기는지, 어떻게 그 기도생활의 앞뒤 시간을 다른 활동들과 조합하고 있는지는 제3자가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창조성이란 것이 어떤 단일한 물질적이고 심미적인 기준 아래 측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도네시아 무슬림들의 삶을 창조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