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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깊이 알기/미의식과 미용관행

인도네시아에 찾아온 패션 질밥(Jilbab)의 계절

 

2016년의 라마단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 “질밥 트래블러(Jilbab Traveler: Love Sparks in Korea)”가 개봉했다. 영화는 배우들의 부진한 연기, 케케묵은 줄거리, 그리고 지나친 종교적 클리셰로 인해 혹평을 면치 못했지만, 제목부터 질밥(Jilbab, 이슬람권에서 사용하는 머리쓰개 내지 이슬람식 복장. 히잡Hijab이라고도 불림)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주인공으로 연기한 인도네시아의 탑 여배우가 평상시의 섹시한 모습과는 달리 노출을 전혀 하지 않는 복장에 질밥을 쓰고 등장하며, 그녀가 쓴 질밥들이 상당히 스타일리쉬했다는 점은 인도네시아 무슬림(Muslim, 이슬람 신도) 여성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글은 경상북도 경제진흥원 산하 웹진 "경북PRIDE상품 글로벌웹진 2016년 8월호, vol.28"에 연재된 것입니다. 정보 이용 시 저작권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본: http://pridegb.ngelnet.com/Pride_global_webzine/201609/contents/brow012001.php 

(아래 본문 내용 계속)

 

 

 

 영화 질밥 트래블러속 질밥 스타일링

출처: https://qubicle.id/story/steal-the-look-inspirasi-gaya-hijab-dari-film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삼는 여러 웹진에서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질밥 스타일링 방법을 소개하였다. 에디터들은 질밥 패션으로 여성들의 관심을 끈 앗살라무알라이쿰 베이징(Assalamualaikum Beijing)”(2014), “히잡(Hijab)”(2015), “수르가 양 딱 디린두깐(Surga yang Tak Dirindukan)”(2015)과 같은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질밥 스타일에 대한 설명들 역시 제공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필자가 인도네시아에서 관찰해왔던 바와 일치하는 몇 가지 사항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은 질밥을 주로 머리카락과 목덜미를 가리는 데에 사용한다. 동시에 질밥은 멋내기를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이때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 수준을 고려하는데, 이를 테면 여성들에게는 상황에 따라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질밥이 다르다. 질밥으로 사용되는 천의 종류 또한 다양하며, 그 색상과 무늬 또한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된다. 질밥을 두르는 방식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의복에 따라 다르게 매치될 수 있다. 질밥 스타일링에 관한 담론들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 즐비한 질밥 스타일링 안내서적들과 유투브·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과 같은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디어 영역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정치·경제 영역에서도 질밥을 패션의 일환으로 취급하고 이를 더욱 부흥시키려는 하려는 기류가 뚜렷하게 감지된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무슬림 패션 시장의 규모는 127억 달러로 세계 5(2014년 기준)를 기록하였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러한 조류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20168월 초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세계이슬람경제포럼(WIEF)에서 조꼬위 대통령은 무슬림 패션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지적하였는데, 실제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0년까지 무슬림 패션의 지역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무슬림 패션 페스티벌(MUFFest)과 같은 대형 무슬림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패션 질밥을 쓰고 2016 WIEF에 참가한 여성들

출처: http://salsabeela.tumblr.com/page/2

   

     질밥을 필두로 한 무슬림 패션 붐은 인도네시아에서 유래가 없었던 현상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를 가진 국가이지만, 이슬람 국가라고 단언할 만한 시기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했던 10세기 무렵, 인도네시아에에는 이미 토착신앙과 힌두·불교적 믿음이 뿌리 깊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슬람은 기존의 종교를 제거하고 이슬람을 강제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초기 무슬림들은 경전 꾸란의 내용에 입각하여 종교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기보다는 신비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측면을 강조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이슬람의 발전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복장은 이슬람식 복장이 아닌 몸에 꼭 붙는 랩 스커트인 사롱(sarong)과 속이 훤히 비치는 블라우스인 끄바야(kebaya) 차림이었으며, 머리에는 종교행사가 있을 때나 예배 시간이 되었을 때 작은 천을 얹는 정도였을 뿐 일상적으로 질밥이 착용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된다.

 

     근대국가로서 인도네시아가 성립될 당시에도, 이슬람 국가 수립을 주장하는 일부 급진세력의 압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정부는 당시의 정치적 지형을 고려하여 이슬람식 국가 이념이 아닌 다양성 속의 통일성(Bhinneka Tunggal Ika)”이라는 국가 이념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이념 아래 이슬람만이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 불교, 힌두교, 유교가 국가에 의해 공인된 종교로서 헌법에 명시되었으며, 이슬람과 관련한 상징이나 기호가 사용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2년도에 공공 교육에서 질밥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발효되었다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에서 질밥 착용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오늘날의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학계에서는 여성들의 질밥 착용이 늘어나고 관련 시장의 규모가 커지게 된 주된 이유로서 1970년대부터 이슬람권을 휩쓸기 시작한 이슬람화(Islamization)의 영향을 지적한다. 개괄적인 의미에서 이슬람화란, 이슬람 국가 건설을 그 궁극적인 목표로 하며, 삶의 제 영역을 꾸란의 내용에 따르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인도네시아에도 역시 이슬람화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그저 종교 그 자체나 정치 영역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경제 영역에서는 이슬람 마케팅과 소비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무슬림 패션은 그 한 부분을 이룬다.

 

 

 

 유니클로의 무슬림 웨어

출처: www.worldreligionnews.com

 

     하지만 패션의 영역이 과연 이슬람화의 원래의 의도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문자 그대로의 꾸란의 내용에 따른다면, 무슬림 여성의 신체와 단장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움은 공적영역에서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가내 밖에서는 반드시 질밥을 써야 할 뿐 아니라, 쓰더라도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아 남성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스타일의 질밥을 착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은 꾸란의 내용 그대로를 지키지 않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질밥 스타일링을 시도하고 있는가? 이는 여성들에게 종교에 순응하고자 하는 열망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적으로 해석된 이슬람의 교리 내에서는 도통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가지 열망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서 질밥에 대한 이슬람의 교리를 재해석한다. 이들에 의하면 질밥과 관련한 핵심 교리는 얼굴과 손을 제외한 신체와 머리카락의 노출의 금지를 뜻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킨다면 아름답게 꾸며도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으로 깔끔하게 꾸민 모습이 뭇 여성들에게 모범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을 배양해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다니는 무슬림 여성들 외에도 질밥을 쓰고 다니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거나 이미 착용을 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양적 변화 이상을 의미한다. 많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이슬람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호소력을 갖게 되었고, 질밥 착용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의 일환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여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도 자신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가꾸어도 무방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나름의 근거를 찾아가고 있다. 이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패션 질밥 붐이라는 사회 현상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참고 자료:

김형준 외. 2011. “인도네시아 이슬람 경제.” 동남아시아 이슬람 경제의 이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세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33-211.

남성민. 2016. ““질밥(Jilbab)” 속의 아름다움: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과 실천.” 강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수인. 2015. “인도네시아 진보적 무슬림 여성들의 베일에 대한 인식과 실천: 파따얏 엔우 여성들을 중심으로.”아세아연구162: 208-273

Hans David Tampubolon. 2016. “‘Jilbab traveler’: Offers little spark.” The Jakarta Post. Sat, July 2

KOTRA global window. 2016.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는 세계 이슬람 경제.”